건강·Health/건강

[한혜경의 ‘100세 시대’]<1>남성 갱년기 스트레스, 여자들처럼 표현하라

NaNo+AlphaGo 2012. 11. 3. 15:30

50대 중반인 S 씨의 남편은 현재 별문제 없이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태도가 이상해졌다. 식구들 눈치를 보면서 자꾸 쭈뼛거리는 것이다.

밥 먹다가 음식을 흘리기라도 하면 남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고, 다른 식구들은 밥을 먹고 있는데도 자신의 빈 식기를 가져다가 설거지를 하기 시작한다. 아직 밥 먹고 있는데 웬 설거지냐, 그냥 놔두라고 해도 고집을 피우며 계속한다. 짜증을 내도 소용이 없다. S 씨는 그런 남편이 불쌍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걱정도 된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아무 일도 없스무니다’라며 개그맨 흉내를 내는데 웃기는 게 아니라 섬뜩한 느낌까지 든다.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어떤 스트레스가 있는지 도대체 말을 안 하니 모르겠고, 뭣 때문에 갑자기 식구들 눈치를 보고 무슨 생각으로 설거지를 그리도 열심히 하는지 답답한 마음이 든다.

더 심각한 건 이 답답한 마음이 쌓이면 남편을 미워하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점이다. 시아버지가 은퇴한 후부터 점점 사이가 안 좋아져서 요즘엔 자식들 앞에서도 싸움을 참지 못하는 시부모 생각도 난다. S 씨도 전에는 ‘시어머니가 시아버지 돈 못 번다고 구박하는 건 여자들이 너무 얄팍한 거 아닐까? 평생 고생한 시아버지가 너무 가엾다. 나는 나중에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남편 태도를 보면서 시부모 사이가 나빠진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일종의 ‘소통 부족’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S 씨의 친구들도 하나같이 “우리 남편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부드러워지고 배려심이 많아진 것 같다는 경우도 있지만 무슨 불만이 있는지 말도 안 하고 괜한 고집을 피운다는 불만도 많았다.

여자의 갱년기보다 남자의 갱년기가 더 심각한 것 같다는 얘기도 많이 한다. 여자들은 만나서 여기저기 아프다는 얘기, 속상한 얘기도 하며 자신이 겪는 여러 갱년기 증세가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다 보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져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남자들은 갱년기나 노화에 따르는 스트레스를 도대체 누구와 나누는지 알 수 가 없다는 거다. 수명도 길어진다는데 이런 남자와 어떻게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나,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여자들의 갱년기가 힘들다는 건 많이 알려져 있어 가족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갱년기니까…’라며 받아들이고(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호르몬 치료 등 처방도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여자들은 또 생각보다 남자들에 비해 변화를 잘 받아들인다. 임신과 출산을 통해 일어나는 엄청난 변화에 익숙해 있고, 가정과 직장에서도 남자보다 훨씬 많은 변화를 경험한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변화란 어쩌면 당연한 일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친밀하고 진정한 관계 맺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남자들의 갱년기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증상이나 처방에 대한 정보도 많지 않다. 하긴 남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갱년기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무튼 남자들은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니까 말이다.

남자들은 가끔이라도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마음을 표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조그만 구멍 하나가 몇십 년간 쌓아온 결혼이라는 성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남자들이 힘든 상황을 설명하고 감정을 표현할 수만 있어도 갱년기로 인한 피차의 고통과 피해가 줄어들 거라는 것, 이것이 황혼기의 불화나 이혼을 피하고 싶은 여자들의 생각이다.

한혜경 호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