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의 빛나는 지혜 중 하나가 ‘부럼’이다. 정월 대보름,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어머니가 건네주는 땅콩과 호두, 밤…. “한 입에 깨뜨려 마당에 버려라.” 일년 내내 자식의 치아가 건강하고 피부에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 달라는 소망이다. 물론 속설이다. 하지만 견과류의 뛰어난 효능을 감안하면 부럼은 과학에 근거한 풍습이다.
3년 전 위암 수술을 받고 치료 중인 윤모 씨(50·여)는 수술 후 식습관을 바꿨다. 맵고 짜고 뜨거운 암 환자의 ‘3불(不)음식’을 피해 온 그는 간식을 워낙 좋아했던 터라 이를 참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견과류 주전부리’가 그에게 큰 위안이 됐다. 윤 씨는 작은 껌 통에 호두와 잣 등을 넣어 두고 심심할 때마다, 출출할 때마다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 먹는다. 아이스크림은 바닐라 아이스크림만을, 빵이나 떡은 호두 땅콩이 들어 있는 것만 선택한다. “치료를 병원에만 의존하진 않습니다. 이런 식습관이 위안이 되고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건강식
견과류는 단단한 껍데기에 싸여 있는 열매를 말한다. 대표적인 게 호두 잣 밤 은행 땅콩 아몬드 피스타치오 피칸 캐슈너트 등이다. 이 열매들은 여러 연구에서 심장병 암 당뇨병 전립샘 질환 등 각종 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데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식품의 효능을 인정하는 데 인색한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2003년 견과류를 심장질환의 위험도를 낮추는 식품으로 선정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견과류를 10대 건강식품으로 꼽았다. 비타민E와 같은 항산화 물질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키는 등 항산화, 항염증 작용이 항암작용으로 이어진다는 게 복수의 연구 결과다.
견과류의 ‘황제’는 단연코 호두다. 호두는 견과류 중 항산화제가 가장 많이 들어 있으며 오메가-3 지방산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고혈압, 동맥경화에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측은 전립샘암에, 미국 마셜대는 유방암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호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말. 유청신(柳淸臣)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 그의 고향인 충남 천안시 광덕면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천안호두과자’가 나온 연유다. 지금은 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이 생산량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국내에서 유통되는 호두 대부분이 미국 캘리포니아산(産)이라는 점. 지난해 국내 호두 생산량은 1221t. 수입량은 이보다 7배로 많은 8602t이다. 산림청과 농협 등에서 수종을 개량하고, 수확 시기를 앞당기며, 재배 면적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먹는 방법 먹는 양에도 신경 써야
견과류가 좋다고 무턱대고 먹는 것은 금물이다. 식품 전문가들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살짝 볶아 채소와 곁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번에 한 줌, 일주일에 3회 이상 먹는 게 좋다.
자녀 3명을 둔 주부 전모 씨(46·대전 서구)는 식탁 위에 항상 호두 잣 땅콩 아몬드 등을 놓아둔다. 땅콩과 호두는 값싼 외국산 대신 되도록이면 국산을 놓는다. 땅콩은 껍데기째 두어 자녀들의 까먹는 재미를 느끼게 했다. 전 씨는 “자녀들이 눈에 띌 때마다 조금씩 집어 먹는다”며 “과자와 사탕 대신 견과류가 아이들의 간식이 됐다”고 말했다.
술안주로 인기 있는, 캔에 들어 있는 혼합 견과류는 경계해야 한다. 가염(加鹽)된 것으로 감자 칩 한 봉지만큼이나 염분이 높다. 많이 먹었다가는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
이현규 한양대 교수(식품영양학과)는 “최상의 맛과 풍미를 위해서는 섭씨 0∼3.3도, 습도 55∼65%로 냉장 보관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몸 상태에 따라 골라 먹는 지혜도 필요하다. 미국 건강 정보 사이트인 ‘헬스닷컴’은 ‘심장건강에는 하루 8개 정도의 호두, 뇌 발달에는 땅콩, 다이어트에는 칼로리가 상대적으로 적은 아몬드 피스타치오 캐슈너트가 좋다’고 소개했다.
▶ [채널A 영상]‘암을 이긴 의사’ 홍영재 “4대 항암음식 챙겨야”
이기진 기자·한중양식조리기능사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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