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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애인 계정도 OK"…밀레니얼세대의 비밀번호 공유 문화

NaNo+AlphaGo 2018. 8. 21. 21:10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진 20대 초반 대학생 A씨. 관계가 끝나자마자 그는 여자친구의 물건을 전부 버렸지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에 접속할 때만큼은 사귈 때 애용하던 여자친구의 계정을 사용한다. 그는 "갑자기 한 달에 10달러를 내자니 왠지 손해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는 넷플릭스 로그인 창에 전(前) 여자친구의 메일주소와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이 단적인 사례는 넷플릭스, 유튜브 등 동영상 스트리밍 이용이 일상화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이후 출생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비밀번호 공유’ 현상을 보여준다. 19일(현지 시각) 미국 경제매체 CNBC는 밀레니얼·포스트 밀레니얼 세대(2000년 이후 출생자)만의 특징인 비밀번호 공유 문화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보도했다. 

CNBC의 보도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35% 이상,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는 42%가 스트리밍 서비스의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X세대(196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 출생)의 비밀번호 공유 비율은 19%,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경우 13%임을 고려할 때, ‘비밀번호 공유’는 유료 동영상에 익숙한 밀레니얼과 그 이후 세대만의 문화라는 해석이다. 

동영상 스트리밍 이용에 익숙한 밀레니얼과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는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비밀번호를 그 이전 세대보다 쉽게 공유한다. /테크크런치
비밀번호 공유는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의 수익 구조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유튜브·아마존·훌루 등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의 주 수입처는 이용자에게 받는 월간 구독료와 광고 수익이기 때문이다. 비밀번호 공유 문화로 이들이 잃고 있는 잠재적 수익은 최대 수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미디어리서치 회사 ‘마지드’의 힐 로젠가드 대표는 비밀번호 공유에 대해 "부모의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하고 가족 휴대전화 요금제에 편승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여러 기기에서 유료 콘텐츠에 로그인하는 것은 다른 무임승차보다 장벽이 낮아 앞으로 동영상 서비스 업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젊은층이 이전 세대보다 친구 사이에서 쉽게 암호를 공유하는 이유는 구매 개념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밀레니얼 이후 세대는 "내가 지불한 이상 같이 쓸 수 있는 거라면 왜 그 이익을 퍼뜨리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는 것이다. 

관계를 중시하는 젊은층의 특징이라는 해석도 있다. 수딥 바티아 펜실베니아대 심리학 교수는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것은 본인이 동영상을 보는 데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도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고 말했다. 

각종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아이스톡
전문가의 우려와 달리 업계 임원들은 암호 공유에 관대한 모습을 보여왔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2016년 "비밀번호 공유는 문제가 될 일이 아니며 신규 유료 사용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프리미엄 영화채널 HBO의 리차드 플레퍼 CEO 또한 2014년 "암호 공유를 줄일 방법을 모색하고 있긴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 업체가 보이는 ‘여유’엔 이유가 있다. 고객 유지 전략에서 암호 공유가 긍정적 효과를 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혼자 유료 콘텐츠를 볼 때보다 친구나 룸메이트와 함께 암호를 공유해 사용하고 있으면 유료 구독을 끊기도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는 분석이다. 

암호 공유를 막는 것도 기업의 선택지가 되긴 힘들다. 이미 암호 공유 문화가 자연스러운 밀레니얼 세대를 상대로 무작정 공유를 금지했다간 집단 탈퇴와 같은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로젠가드 대표는 "결국 답은 콘텐츠다"라며 "젊은층은 가치 있다고 느끼는 콘텐츠에 돈을 지불하는 걸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1/20180821027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