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Health/건강

뚜벅뚜벅 ‘침묵의 살인자’… 당화혈색소 수치에 주목하라

NaNo+AlphaGo 2018. 11. 17. 07:06



김민선 서울아산병원 당뇨병센터 소장(왼쪽)이 당뇨병 환자 정연석(가명) 씨의 건강검진 결과를 분석한 뒤 처방을 내리고 있다. 

김 소장은 공복혈당뿐 아니라 당화혈색소 수치 변화를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직장인 정연석(가명·48) 씨는 올 2월부터 목마름 증세가 심해졌다. 소변 양도 많아졌다. 감기 후유증인가 싶었다. 아니었다. 병원에서 혈당을 측정했더니 공복혈당이 326mg/dL이었다. 공복혈당이 125를 초과하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이미 정 씨는 중증 당뇨병 환자인 셈이다. 


사실 정 씨는 당뇨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 4월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이미 당뇨병 초기라는 데이터가 나왔다. 다만 결과지에 당뇨병 환자라는 사실이 적혀 있지 않아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결과지에는 내분비내과 진료를 받아보라는 권유만 담겨 있었다. 정 씨는 “병이 아니라는데 유난 떨고 싶지 않았다. 회사 일도 바쁘고 개인적으로 정신이 없던 때이기도 해서 진료를 받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 씨가 당시의 검진 결과지를 들고 김민선 서울아산병원 당뇨병센터 소장(내분비내과 교수·53)을 만났다. 김 소장은 “결과지를 꼼꼼히 봤다면 당뇨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 당화혈색소는 당료병 진단 으뜸 지표 


지난해 4월 건강검진 당시 정 씨의 공복혈당은 113이었다. 공복혈당이 99 이하이면 정상이다. 그러니 정 씨는 당뇨병 전 단계인 공복혈당장애(100∼125)에 해당하지만 당뇨병은 아니다. 


식후 2시간 혈당으로도 당뇨병 여부를 알 수 있다. 식후 2시간 혈당은 139 이하일 때 정상이다. 이 혈당이 140∼199이면 당뇨병 전 단계인 내당능장애, 200을 초과하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정 씨는 식후 2시간 혈당을 따로 측정하지 않았다. 


어쨌든 공복혈당이 당뇨병 전 단계이기 때문에 정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정 씨가 당화혈색소(HbA1c) 수치에 주목했다면 대응은 달라졌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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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화혈색소는 적혈구의 혈색소가 얼마나 ‘당화(糖化)’되었는가를 가리키는 지표다. 당뇨병 환자라면 혈액 안의 포도당 농도가 높아질 것이다. 당연히 당화된 혈색소도 많을 것이고, 당화혈색소 비중도 올라갈 것이다. 의학적으로 당화혈색소가 5.6% 이하이면 정상이다. 당뇨병 전 단계는 5.7∼6.4%이며 6.5%를 넘어서면 당뇨병에 걸린 것으로 판단한다. 당시 정 씨의 당화혈색소는 6.5%였다. 이미 당뇨병에 걸렸다는 뜻이다. 하지만 당화혈색소에 주목하지 않아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물론 당시 의사도 그 점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김 교수는 “당화혈색소는 최근 2, 3개월의 평균 혈당 상태를 반영하는 지표다. 예전에는 검사 표준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아 임상 현장에 잘 적용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김 교수는 “당뇨병 초기에는 공복혈당이 잘 안 올라가고 식후혈당만 올라가는 사례가 많다. 그런데 대부분 공복혈당만 재니까 초기 당뇨병을 놓치기 쉽다. 당화혈색소 수치로 이런 초기 당뇨병을 찾아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 편한 마음만으로도 치료 효과 


정 씨의 2월 검사 기록을 보면 공복혈당은 326, 당화혈색소는 11.3까지 치솟아 있었다. 당장 치료가 시급한 상황. 정 씨는 세 종류의 약을 처방받았다. 갑자기 치솟은 혈당을 떨어뜨리기 위해 의사는 약을 ‘강하게’ 처방했다고 한다. 이후 5개월 동안 집중 치료를 받은 결과 공복혈당은 106으로 떨어졌다. 당화혈색소도 5.5%로 낮아졌다. 놀라운 성적표다. 



우선 약을 꾸준히 복용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잘못된 식습관을 고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정 씨는 폭식을 줄이기 위해 안 먹던 아침 식사를 챙기기 시작했다. 매 끼니 식사량은 절반으로 줄였다. 한두 달은 배고픔 때문에 서글펐다. 그 고통을 넘기니 곧 익숙해졌다. 고기의 지방은 제거하고 살코기만 먹었다. 그토록 싫어하던 채소를 먹기 위해 쌈을 식탁에 올렸다. 


김 교수는 올바른 식습관에 대해 ‘원칙’을 강조했다. 채소는 씹어 먹어야 한다. 과일과 섞어 즙을 내면 당이 농축된다. 그런 즙을 먹으면 혈당을 높일 수 있다. 또 정제되지 않은 곡물을 추천했다. 껍질을 다 벗겨낸 ‘고운 곡물가루’는 좋지 않다. 편식도 금물이다. 가급적 여러 반찬을 조금씩 먹기를 추천한다. 간편식이나 외식은 피해야 한다. 덜 달고, 덜 짜고, 덜 기름진 것을 먹어야 한다. 김 교수는 이를 ‘맛없는 음식 먹기 운동’이라 부른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노력한 점도 치료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정 씨는 사직서를 쓸까 말까 고민했을 정도로 직장 내 스트레스가 컸다. 당뇨병을 치료하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고 애썼다. 마음이 편해지자 스트레스가 줄었고, 혈당이 떨어졌다. 


김 교수는 “환자의 50% 정도는 혈당이 확 올라가기 전에 갈증을 느끼면서 음료수나 주스, 과일을 많이 찾는다. 그런데 20% 정도는 정 씨처럼 스트레스 때문에 혈당이 급격하게 올라간다”라고 설명했다. 


○ 당뇨 치료는 평생 해야 


정 씨는 “조금 더 좋아지면 약을 끊어도 되나”라고 물었다. 김 교수는 “약을 줄이더라도 끊어서는 안 된다. 장기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김 교수는 정기적으로 운동하라는 처방도 내렸다. 정 씨는 당뇨병 진단을 받은 이후 운동 장비를 사놓았지만 거의 써 본 일이 없다. 김 교수는 “약만으로 완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당뇨병이 오래 지속되면 몸 상태는 조금씩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운동을 병행하지 않으면 건강이 나빠질 확률이 있다”고 충고했다. 


1시간이 조금 넘는 집중 상담이 끝났다. 정 씨는 “혈당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솔직히 곧 당뇨병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일했던 것 같다. 당장 운동부터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