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장수 도시 사쿠시 주민 식단 현장서 보니
일본 도쿄(東京)에서 북쪽으로 137km 떨어진 나가노(長野) 현 사쿠(佐久) 시.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이 열린 곳으로 해발 10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다.
사쿠 시는 1960, 70년대만 해도 일본 ‘최단명(短命) 도시’였다. 고원지대라 운동 부족으로 인한 고혈압 등이 많았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하지만 30, 40년이 지난 지금 사쿠 시는 ‘최장수 도시’로 불린다.
2007년 유엔인구기금(UNFPA) 조사 결과 사쿠 시의 평균 수명은 남자 79.84세, 여자 86.48세로 남자는 일본(평균 79.1세)에서 1위, 여자(평균 86.3세)는 3위를 차지했다. 2000년(남자 78.9세, 여자 85.3세)보다 평균 1년 정도 수명이 연장된 것이다.
오래 사는 것만이 아니다. 고령자의 경우 거동이 불편해 누워만 있는 경우가 2.98%에 불과해 일본 평균(5.33%)에 비해 훨씬 낮다. 우리나라의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앓다가 죽는다)가 실현되는 곳이다.
무엇이 최단명 도시를 30, 40년 만에 최장수 도시로 만든 것일까.
결론부터 소개하면 건강에 대한 개인의 노력과 자치단체의 정책이 맞물려 인간의 로망인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쉽게 죽는다’를 가능케 했다.
철저한 저염과 생활 속 운동
13일 낮 12시. 사쿠 시 외곽에 있는 미야자와 긴이치로(宮驛銀一郞·83) 씨 집. 동갑내기 부인 미야자와 미치(宮驛美知) 씨와 함께 막 점심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사카도 지요코(坂戶千代子·여) 사카 시 고령자지원과장의 협조를 얻어 이현규 한양대 교수(식품영양학과)와 방문해 일본 최장수 마을의 평범한 가정의 점심식사 ‘해부’에 나섰다.
밥과 녹차, 그리고 반찬은 6가지였다. 매실 양배추 오이 마늘 감자 무 게살 등 채소 위주였다. 조리 방법도 일본 전통 조리법에 근거했다. ‘우메보시’로 불리는 매실 장아찌는 약간의 소금과 설탕으로 일주일만 절여 푸르스레한 색을 띠고 있었다. 양배추는 다른 양념은 하지 않은 채 마요네즈와 식초로 무친 것. 오이와 무로 만든 ‘스키모노’ 역시 약간의 소금에 절인 채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렸다. 감자는 기름에 살짝 볶아 간장과 함께 졸인 것, 마늘은 우리나라 깻잎과 비슷한 향료로 담근 것이었다.
파와 고춧가루 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디저트는 이 지역 특산물인 밤과자였다.
미야자와 씨는 “한두 가지를 제외하곤 점심식사의 표본 식단”이라고 소개했다. 채소만 즐겨 먹는 것은 아니다. 아침 메뉴는 된장국에 생선구이, 계란찜이었다. 건축사로 일하다 10년 전 은퇴한 미야자와 씨는 이 지역에서 유행하는 ‘마레토(mallet·나무망치) 골프’를 일주일에 3, 4차례 즐길 정도로 왕성한 체력을 갖고 있다. 무용교사였던 부인 역시 마찬가지다.
미야자와 씨는 건강 비결에 대해 “단연코 식생활이다. 소금을 줄였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자신의 차에 이웃 3명을 태워 마레토 골프장으로 향했다. 한양대 이 교수는 “소금으로 조리하되 염도를 낮추고, 채소와 과일 등은 듬뿍 섭취하는 한편, 저녁 메뉴에는 고기나 생선을 꼭 포함해 단백질을 보충한 것이 특징”이라며 “게다가 식사량은 ‘조금 아쉽다’고 느끼는 80% 섭취를 실천하는 전형적인 건강식단”이라고 설명했다.
인위적 환경 조성도 한몫
사쿠 역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인 시립 구마바(駒場) 공원. 수영장 테니스장 미술관 등이 있는 공원 한쪽 삼나무 밑에서 70대 노인 50∼60명이 4명씩 팀을 만들어 마레토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이 골프는 게이트볼과는 달리 깡통처럼 생긴 채를 이용해 주먹만 한 공을 홀에 집어넣는 게임. 바닥이 고르지 않은 데다 18홀까지 파3∼파5로 구성돼 있는 점도 게이트볼과는 사뭇 다르다.
구라시나 가스미 씨(84)는 “마레토 골프에 재미를 붙여 동네 친구들과 일주일에 몇 번씩 찾는다”고 말했다. 마레토 골프장은 사쿠 시가 고령자의 건강을 위해 시내에 20개나 조성했다. 바닥이 울퉁불퉁한 나무그늘 밑에 별도의 잔디 없이 홀을 만들고 깃발만 꽂으면 할 수 있어 특별히 돈이 들지 않는다.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구라시나 씨가 게임을 마친 뒤 찾은 식당에 동행했다. 5분쯤 걸어서 도착한 식당.
동행한 이케다 마사요(池田昌代·43·여) 나가노 현 관광부 관광진흥계장은 이날 제공된 점심 메뉴를 “사쿠 시가 자랑하는 ‘핀코로’ 식단”이라고 소개했다.
1500엔(약 2만 원) 정도 하는 이날 점심은 사쿠 시에서 생산된 재료만을 이용했다. 이 지역 강에서 잡은 잉어를 간장으로 조린 것, 호박과 우유를 섞은 푸딩, 닭가슴살, 연어 구이, 브로콜리, 두부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모두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라는 점이다.
식당 앞에는 ‘지산지소(地産地消·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지역에서 소비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고원지대인 이 지역은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풍성하다. 최대한 지역에서 생산된 재료로 음식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농협에서 1990년대부터 추진해 온 ‘신토불이’,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식사랑농사랑’ 운동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운동은 최근 국내에서도 활성화되는 추세다. 김미리 사단법인 식생활교육대전네트워크 상임대표(충남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지역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을 지역에서 일차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신선도, 가격, 식품마일리지(식재료 이동에 따른 부가적 손실)를 줄이는 것으로 그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신토불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사쿠 시 장수의 비결은 염분을 줄이고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최대한 이용한 식단 구성”이라고 해석했다.
‘주민 건강 100세’를 공약으로 내건 사쿠 시의 시책도 한몫했다.
야나기다 세이지(柳田淸二·43) 사쿠 시 시장은 “잘 먹고 잘사는 도시 건설이 최고의 덕목이다. 이를 위해 전체 공무원 1200명 중 340명을 건강과 관련된 부서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질병 인자가 있는지 예비조사까지 실시하고 있다”며 “한국의 유력 언론사가 ‘암을 이기는 식탁’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대국민 계몽운동을 하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다음 날 오전 6시. 사쿠 시 인근 벳쇼(別所) 온천지구. 대온천탕으로 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입욕료는 150엔(약 2000원). 1시간 정도 온천욕을 마친 시민들은 ‘핀코로 식당’을 찾아 아침식사를 했다.
사쿠=이기진 기자·한중양식조리기능사 doyoce@donga.com
'건강·Health >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 Less 10 More… 癌을 이기는 식탁]<15>이왕이면 등 푸른 생선 (0) | 2013.03.29 |
---|---|
[10 Less 10 More… 癌을 이기는 식탁]<14> 우유야 치즈야 잘 놀자 (0) | 2013.03.29 |
[10 Less 10 More… 癌을 이기는 식탁]<13>제철 과일과 채소가 약이다 (0) | 2013.03.29 |
[10 Less 10 More… 癌을 이기는 식탁]<12> 손 닿는 곳마다 견과류 (0) | 2013.03.29 |
[10 Less 10 More… 癌을 이기는 식탁]<11>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 콩 (0) | 2013.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