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북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라오스 및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동해에 면해 있다. 면적은 약33만 341km²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로 최근 인구 통계에서는 9649만 명으로 조사되어, 세계에서 13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나라의 명칭인 비엣남(베트남어: Việt Nam/ 越南 월남)은 1945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베트남 북부와
중국 남부를 지배하였던 옛 베트남 왕조인 남월(베트남어: Nam Việt남비엣/ 南越)의 명칭을 거꾸로 쓴 것이다.
수도는 하노이이며, 최대 도시는 호찌민시이다.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과 같은 시장경제체제를 가진 명목상 공산주의 국가다.
고대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938년 박당 전투에서 응오 왕조의 시조인 응오꾸옌(베트남어: Ngô Quyền/ 吳權)이 오대 십국의
하나인 남한과 싸워 이겨 독립하였다. 독립 이후 베트남의 왕조들은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안을 따라
남쪽으로 국경을 넓혀갔으며, 이러한 영토 확장은 청나라와의 청불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의 식민 지배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베트남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 지배 기간 동안 계속하여 독립
운동을 벌였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5년 9월 2일 호치민은 하노이의
바딘 광장에서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프랑스와 베트남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1954년 3월 13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군이 대승을 거두고 프랑스군이 철수를 하면서 베트남은 독립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 열강은 제네바 협정을 통해 베트남을 다시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시켰고, 약속하였던 전국 선거를 거부한 채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를 왕으로 내세워 베트남국을 수립하였다. 베트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응오딘지엠의 쿠데타로 붕괴하고
베트남 공화국이 세워져 남북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도미노 이론을 내세워 베트남에 개입하였으며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것보다 훨씬 많은
폭탄을 북베트남 지역에 투하하였고 막강한 화력과 인력을 동원하였으나, 베트남의 끈질긴 저항과 전쟁을
계속하는 동안 일어난 전 세계와 미국 내의 반전 여론에 밀려 결국 1973년 파리 협정을 맺고 철군하였다.
1975년 북베트남은 사이공을 점령하였고, 1976년 7월 2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전쟁 후 베트남은 전후 복구와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통한 발전을 도모하였으나, 1979년 크메르 루주와 전쟁을 치렀고, 중화인민공화국과도 국경분쟁으로
중국-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등 순탄하지 않았다. 1986년 베트남 공산당은 도이 머이를 시작하여 시장 경제를 도입하였고,
2000년에는 대부분의 국가와 수교를 맺었다.
하노이[河內 ]
하노이는 ‘두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뜻으로 1831년 구엔 왕조에 의해 불리워졌던 이름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하노이라는 이름 이전에는 레왕조(黎,1428~1787) 말기 '통킹'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45년 9월 2일 베트남의 공식 수도가 되었으며, 2010년 9월 도시건설 1,000년을 맞이한 유서 깊은 도시이다.
역사
하노이는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꼬 로아 성채는 기원전 200년 경으로 추정되는 최초 주거지로 평가받고 있다. 하노이가 베트남의 중심 도시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하노이의 지리적 위치 덕분이었다. 7세기 무렵 당나라가 지배하던 중국은 남중국해와 활발한 교역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하노이가 원난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교역로에 위치해 있어 자연스레 주요 거점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안남도호부까지 설치되어 활발한 교역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었던 하노이는 당 말기가 되면서 중국이 다른 새로운 교역로를 개발함에 따라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잃었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첫 번째 리 왕조(1009~1225)에 의해 ‘떠오르는 용’이라는 뜻의 탕롱으로 불리우며 베트남의 수도가 되어 마지막 왕조인 구엔왕조(1802~1945)가 집권한 1802년까지 베트남의 수도이자 정치행정 중심지로 남게 되었다. 이후 1902년 프랑스가 침략하여 지배하던 시절에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수도가 되었으며 1940년~1945년 일본점령기에도 여전히 행정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1945년 9월 2일 베트남 민주공화국(북 베트남)이 하노이에서 독립 선언을 한 이후, 하노이는 베트남 민주공화국(북 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1975년 남베트남의 붕괴 이후 북베트남이 세력을 확장하여 1976년 7월 2일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하노이가 수도로 정해졌고, 2008년 8월 하떠이 성을 통합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기후
하노이의 기후는 전형적인 아열대 습윤기후이다. 여름에는 덥고 습하지만, 겨울에는 비교적 시원하고 건조한 특징을 보인다. 여름은 5월에서 9월까지 이며, 11월 부터 이듬해 3월 까지 지속되는 겨울에는 다소 건조한 날씨가 계속된다.
경제
1954년 이후 공업이 발달하여 공구, 발전기, 합판, 직물, 화학제품 등을 주로 생산해왔다. 이후 하노이는 1990년대 이래 급속한 경제 성장을 경험하였다. 1991년부터 1995년 동안 19.1 %, 1996년~2000년에는 연평균 15.9%, 2001년~2003년에는 20.9%에 달하는 성장율을 내기도 하였다. 관광, 금융, 부동산, 은행업이 하노이의 경제 발전의 주요한 축이다. 또한 교통 중심지로서 주변 도시들과 연결성이 높아 무역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하이난은 철도를 통해 하이퐁 항[海防港], 중국 윈난성[雲南省]의 쿤밍[昆明], 호찌민 시와 이어지며 홍강을 통해 배편으로 베트남 북부의 대부분의 지역까지 이어지며 대양으로 나가려는 뱃길로도 이용된다.
문화와 관광
하노이의 주요 관광 명소로는 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코로아 성채, 하노이 문묘, 하노이대학교, 혁명박물관, 군사박물관, 하노이 호찌민박물관 등도 유명하다. 과거 프랑스 지배의 영향으로 프랑스 풍 건물을 많이 볼 수 있어 ‘아시아의 빠리’라고도 불리며, 대표 건축물로는 대통령궁,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 베트남 은행, 성요셉 성당,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 등이 있다.
하노이 중심에 펼쳐진 호안끼엠 호수는 도시의 상징이자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시내에 크고 작은 호수가 많아 '호수의
도시'로 불리는 하노이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호수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호수 주위로 싱그러운 녹음이 어우러져 더위를 피하기에 좋다.
호안끼엠 호수는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다른 분위기를 띤다. 아침에는 가로수가 조성된 넓은 보도를 따라 상쾌한 바람을 마시며 산책을 할 수 있다. 낮에는 호숫가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바둑을 두거나 벤치에 앉아 쉬면서 여가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많다. 호숫가에 분위기 있는 조명을 밝히는 밤에는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고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애용된다.
호수 주변은 하노이 최고의 번화가로 꼽힌다. 호수를 끼고 길게 뻗은 도로는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호수 북쪽에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전통 공예인 수상 인형극을 공연하는 전문 극장과 구시가지가 있고 호수 주변에 자리한 박물관, 대성당 등 주요
명소와 가까워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다. 호수 남쪽에는 저렴한 숙소와 유명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여행자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안끼엠 호수 [Hoan Kiem Lake]
아름다운 호수 북단에 놓인 붉은색 목조 다리를 건너면 호수에 떠 있는 작은 섬 '응옥손'으로 연결된다. 응옥손에는 1865년 세워진 옥산
사당이 있다. 13세기 원나라의 침략에 대항해 싸운 성인의 넋을 기리고 전투, 학문, 의술의 신 등을 함께 모신 사당이다. 본전 옆에는
1968년 호안끼엠 호수에서 잡혔다는 커다란 거북이의 박제가 있다. 길이 약 2m, 무게가 250kg에 달하는 이 거북이가
호안끼엠 호수에 얽힌 전설 속 거북이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환검(還劍)'이라는 뜻을 가진 호안끼엠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15세기 여 왕조를 세운 레로이는 호수의 거북이에게 받은 검으로
명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베트남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승전 보고를 위해 호수를 찾았는데 호수 밑에서 거북이가 올라와 그 검을 물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검을 돌려주었다(환검)'는 뜻을 가진 베트남어 호안끼엠으로 호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도 베트남인들은 나라에 큰일이 일어날 때마다 거대 거북이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서 성스러운 동물로 여긴다.
Beer Street/Beer Corner
하노이 문묘 [Temple of Literature]
1070년 공자를 모시기 위해 설립된 건물로 '공자묘'라 부른다. 1076년 개교한 베트남 최초의 대학으로, 입구 부근에는 과거시험 합격자 이름이 새겨 있다. 녹음이 무성하며,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베트남 학문의 전당이라 부를 만하다. 문묘 안에는 거북 머리 대좌를
한 대형 비석이 놓여 있으며, 이 비석에는 1442년부터 약 300년 동안 시행한 관리등용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하노이 문묘 [Temple of Literature]
우상에 가까운 정치적 인물에게 바친 단순한 기념관
호찌민 영묘 [Mausoleum of Ho Chi Minh]
응우엔 탓 탄이라는 이름으로 1890년 출생한 호찌민('빛을 밝히는 이'라는 의미)은 하나의 전설이다. 여행가, 애국자, 혁명가, 군인, 지도자였던 그는 베트남 공산당을 창당했을 뿐 아니라 프랑스 공산당의 초기 당원이기도 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베트민 단체와 함께 일본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이끌었던 그는, 일본이 항복함으로 생긴 힘의 공백을 잘 이용했다. 1945년 9월, 중앙 하노이에 모인 50만 명의 군중들에게
그는 베트남의 독립을 선포했다. 프랑스는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1946년 지배권을 되찾으려 시도했다.
이는 베트민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1954년 베트남은 분열되었다.
호찌민은 북 베트남의 대통령이 되었고 1969년 베트남 전쟁 중에 사망했다.
거의 우상이라 할 만한 그의 지위를 고려하여, 당 간부들은 그의 유해를 방부 처리하고 그가 독립을 선언했던 자리에 영묘를 짓자는 결정을
내렸다. 베트남에서 나는 고유의 자재들로 지어진 3층짜리 건물이 설계되어 세워졌다. 단순한 튜닉과 샌들을 갖춰 입은 그의 유해는
유리관에 안치되었으며, 관은 기둥들로 둥글게 둘러싸여 있고 꼭대기에 '추 티츠(대통령) 호찌민'이라는 글자가 쓰인 회색에
정육면체 모양을 한 땅딸막한 건물 안에 들어 있다. 로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독립과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영묘는 넓은 퍼레이드 터 앞에 서 있는데, 이곳에서는 군대 사열식이 열린다.
오늘날, 이 영묘는 호찌민을 기리는 베트남 행사의 초점이다. 근처에는 호찌민 박물관과 그의 옛 집도 있는데, 이는 대나무 기둥에
목재를 이용한 단 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양식의 소박한 집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찌민 영묘 [Mausoleum of Ho Chi Minh]
못꼿 사원(베트남어: Chùa Một Cột, 一柱寺)은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절이다. 하노이를 상징하는 고사찰로, 1049년 리 왕조의 창건자인
리 태종이 건설했다. 사원의 주춧돌 직경은 1.25m에 달한다. 1954년 훼손되었으나 다시 복원되었다.
하나의 기둥위에 세워져 있어 "한기둥 사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탕롱 황성(베트남어: Hoàng thành Thăng Long/ 昇龍皇城, 승룡황성)은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유적이다.
베트남의 역대 왕조들은 이 곳에 수도를 두었다. 응우옌 왕조(阮朝)는 안남의 후에를 왕도로 삼았으나 프랑스 통치 시대에는 1887년부터
1954년까지 식민지 기간에 이 곳에 통킹 지방의 정청(政廳)을 두어 행정의 중심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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