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alachian Trail: 늑대의 벌판에서 조용한 고개까지
(Wayah Bald – Burningtown Gap – Tellico Gap, NC)
2025년 5월 28일, 노스캐롤라이나 서부 산맥의 중심을 잇는 애팔래치안 트레일의 한 구간을 걸었습니다. 시작점은 웅장한 돌탑이 서 있는 **Wayah Bald(웨이아 볼드)**였고, 이후 **Burningtown Gap(버닝타운 갭)**을 거쳐 **Tellico Gap(텔리코 갭)**까지 총 9.6마일을 완주하였습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이 길은 비교적 완만한 오르내림과 탁월한 트레일 상태 덕분에, 시속 2.5마일의 속도로 무리 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Wayah Bald (웨이아 볼드) 에서 시작하여 Tellico Gap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단순한 하이킹을 넘어 자연과 문화, 역사와 생태가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체로키의 언어에서 유래된 이름들, 20세기 초반의 토목 유산, 그리고 지금 이 계절의 생명력 넘치는 꽃들까지—모든 것이 조화롭게 흘러가는 숲속의 길 위에서, 우리는 잠시 시간의 흐름을 잊었습니다.
하이킹 하잇라잇
1. Wayah Bald (웨이아 볼드) – “늑대의 벌판”
이번 산행의 출발점은 해발 5,342피트에 위치한 Wayah Bald입니다. 이 이름은 체로키 원주민 언어에서 유래하였으며, **‘Wayah’는 늑대(Wolf)**를, ‘Bald’는 나무가 없는 민둥산을 뜻합니다. 즉, Wayah Bald는 ‘늑대의 벌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상에는 1937년 Civilian Conservation Corps(CCC)가 건설한 돌로 된 파이어 타워가 서 있으며, 한때는 산불 감시용으로 활용되었고 지금은 하이커들에게 360도 파노라마 전망을 제공합니다.
2. 능선 구간 – 월계수의 터널
Wayah Bald를 떠나 북쪽 능선을 따라 걷기 시작하자, 점차 숲의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산 월계수가 트레일 좌우로 풍성하게 피어 있었으며, 그 꽃잎들은 흰빛과 연분홍빛이 섞여 마치 자연이 만든 꽃터널처럼 길을 감쌌습니다. 특히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며 꽃잎에 부딪힐 때, 초여름 특유의 생기와 고요함이 함께 느껴졌습니다. 꽃향기는 짙지 않고 은은했으며, 연초록 이파리와 어우러져 숲의 싱그러움을 더욱 부각시켰습니다.
트레일은 완만하고 잘 정비되어 있어 오르막에서도 큰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었으며, 중간 중간 펼쳐지는 월계수 군락은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의 애팔래치안 산맥이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3. Burningtown Gap – 화전(火田)의 고개
약 4.8마일을 걸으면 도착하는 Burningtown Gap은 조용하고 아늑한 고갯길입니다. 이 지명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과거 원주민 또는 초기 개척민들이 산림을 불태워 개간하는 화전(火田) 농업을 행한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는 한때 인근에 존재하던 마을 ‘Burningtown’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이곳은 Wayah Ridge에서 Tellico Ridge로 이어지는 지형적 분기점으로, 차량 접근이 가능하며 셔틀 하차 지점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트레일 중반부임에도 불구하고 컨디션은 훌륭했으며, 숲속에는 여전히 월계수 군락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긴 거리임에도 단조롭지 않고, 풍경은 끝까지 눈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4. Cold Spring Shelter – 고산의 생명수
Burningtown Gap에서 1.4마일 정도 더 걸으면 나무 사이로 Cold Spring Shelter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1933년 CCC에 의해 지어진 이 쉘터는 전통적인 3면 통나무 구조로, 오늘날까지도 장거리 하이커들에게 귀중한 숙소이자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쉘터 옆에는 시원한 샘물이 흐르고 있어, 식수 보충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 구간에서도 월계수 꽃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한참을 걷다가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내려앉는 순간, 계절과 시간의 흐름이 발걸음에 담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4. Tellico Gap – 고요한 이름의 지리적 경계
산행의 마지막 지점인 Tellico Gap은 해발 약 3,810피트에 위치하며, 차량 접근이 가능한 트레일 접속 지점입니다. ‘Tellico’라는 명칭은 체로키어에서 **‘곡식이 자라는 곳’ 또는 ‘넓은 개활지’**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과거 체로키 부족에게는 산과 계곡 사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이주 통로였으며, 지금은 애팔래치안 트레일의 남북을 잇는 지리적 분기점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길이 마무리되는 지점에서도 다시 한번 산 월계수의 터널이 펼쳐졌고, 긴 여정의 끝을 자연이 마지막으로 환영해주는 듯한 인상이 들었습니다.
Wayah Bald Parking&Trailhead
Wayah Bald 정상에 설치된 해설 안내판 요약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Wayah Bald 어원과 체로키 역사
→ “Wayah”는 체로키어로 “늑대”를 뜻하며, 과거 붉은 늑대의 서식지였던 이 지역은 원주민들에게도 의미 있는 장소였습니다. - 1937년 CCC에 의해 건설된 석조 파이어 타워
→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이 타워는 당시 대공황 속에서 국가가 청년들을 고용해 지은 대표적 공공사업 유산입니다. - AT와 Bartram Trail의 교차점
→ 이 두 개의 역사적 트레일이 만나는 지점으로서 Wayah Bald는 동부 산악 트레킹 문화의 상징적 장소입니다. - John B. Byrne
→ 이 타워는 이 지역 산림보호에 헌신한 공무원 John Byrne의 이름을 기념하여 명명되었으며, 지역 커뮤니티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Wayah Bald Fire Tower
안내판에서 언급된 John Byrne을 추모하는 명패가 있습니다, 불과 37세의 나이로 국가가 잃은 찐 일꾼이었습니다.
Wayah Bald 전망대에 설치된 "The Ever-Changing View" 해설판입니다. 이 패널은 전망에서 보이는 풍경의 변천사와 산림 관리 방식, 그리고 나나할라 국유림(Nantahala National Forest)의 생태적 가치를 설명합니다.
Wayah Bald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것은 장엄한 경관이 아닌, 모든 것이 사라진 흰색의 침묵이었습니다.
**마운틴 로렐(Mountain Laurel, 학명: Kalmia latifolia)**입니다. 한국어로는 "산 월계수" 또는 단순히 "마운틴 로렐"이라고 부르며, 애팔래치아 지역을 대표하는 봄철 야생화입니다.
나무에 붙은 버섯은 **영지버섯 (Reishi mushroom)**입니다. 학명은 Ganoderma lucidum이며, 한국어로는 **영지(靈芝)**라고 불립니다.
▪︎ 특징
- 형태: 단단한 갓, 광택이 나는 어두운 붉은색 혹은 자주색.
- 표면: 니스칠한 듯 반들반들하며, 장수버섯 또는 영험한 버섯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고귀한 인상을 줍니다.
- 서식처: 습한 숲속의 활엽수 고목이나 죽은 나무 줄기에 자랍니다.
- 생태적 역할: 부패균으로서 죽은 나무를 분해하며, 산림 생태계의 정화자 역할을 합니다.
- 약용: 전통 동양 의학에서 면역력 증진, 항염 작용, 간 기능 보호 등에 사용되어 왔습니다. 다만 야생에서 채취한 것은 딱딱하고 먹기 어려우며, 약용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따로 가공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진 속 꽃은 **Flame Azalea (플레임 아잘레아)**로 보입니다. 학명은 Rhododendron calendulaceum이며, 한국어로는 불꽃 진달래 또는 황철쭉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 주요 특징
- 색상: 불타오르듯 강렬한 오렌지·노란색 계열, 간혹 붉은빛 섞임
- 꽃 모양: 5~7갈래의 꽃잎이 부챗살처럼 펼쳐지며, 길게 뻗은 수술이 인상적
- 개화기: 늦봄~초여름 (5월6월 초), 해발 3,000~5,000피트 산림 지역에서 주로 개화
- 서식지: 미국 동부 산지—특히 블루리지 산맥, 그레이트 스모키, 난타할라 국유림 등
- 특징: 독성이 있어 식용 금지 (가축도 섭취 시 위험), 시각적 감동 중심의 관상용
숲 사이로 고개를 내민 동물은 **야생 칠면조(Wild Turkey)**로 보입니다. 학명은 Meleagris gallopavo이며, 북미 지역의 숲과 초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대형 조류입니다.
▪︎ 특징
- 크기: 몸길이 약 90~120cm, 수컷은 매우 크고 깃이 화려함
- 색상: 몸은 어두운 갈색~청검정색 계열, 머리는 털이 거의 없고 회청색
- 행동: 대부분 땅 위에서 생활하지만, 위협을 받으면 빠르게 달리거나 짧은 비행으로 피함
- 서식지: 동부와 남동부 북미 지역의 숲, 특히 참나무–밤나무 혼합림을 선호
- 먹이: 도토리, 씨앗, 곤충, 풀잎, 작은 양치식물 등
Licklog Gap
▪︎ 지명 의미 (어원)
- **“Licklog”**라는 이름은 개척 시대 용어로,
소금기가 묻은 통나무(salt-covered log) 혹은
**동물이 핥았던 나무통(salty log)**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 야생동물, 특히 사슴, 엘크, 소들이 광물질(특히 소금)을 섭취하기 위해 나무나 바위 등을 핥는 행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개척민들은 이 같은 장소를 "Licklog"라 불렀고, 그 주변의 **고개(gap)**를 이름에 붙여 Licklog Gap으로 명명한 사례가 여럿 있습니다.
나무와 풀숲을 뚫고 나오자, 시야가 환하게 트인 Burningtown Gap이 펼쳐졌습니다. 마치 조용한 교차로처럼, 이곳은 숲과 길, 그리고 하이커의 발걸음이 만나는 곳입니다.
Burningtown Gap을 지나 계속 북쪽으로 이어지는 애팔래치안 트레일(AT)
Cold Spring Shelter의 모습입니다. 1933년 CCC에 의해 지어진 이 쉘터는 전통적인 3면 통나무 구조로, 오늘날까지도 장거리 하이커들에게 귀중한 숙소이자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른 쉘터와 달리 식수원은 바로 앞에 있어 편의성이 아주 좋은 장소입니다.
굽은 가지들이 엮어 만든 이 나무 터널은 주로 **산철쭉(Rhododendron maximum)**과 **로렐(Mountain Laurel)**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안개 속에 뒤엉킨 가지들 아래로 습한 흙길이 이어지고, 고인 빗물 위로 숲의 숨결이 퍼집니다. 자연이 만든 이 아치형 터널은, 조용히 걷는 이에게만 허락되는 신비로운 통로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늘은 아직도 눈을 꼭 감고 어떤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있습니다.
낡은 이정표가 **“Rocky Bald”**라 적힌 방향을 조용히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작은 갈림길을 따라 오르면, 바위가 드러난 능선 위에서 탁 트인 조망이 펼쳐지는 특별한 장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날이 맑았다면 멀리 블루리지 산맥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었겠지만, 이날은 짙은 안개가 바위 위 풍경을 고요히 감싸고 있었습니다.
산 월계수(Mountain Laurel)—초여름 애팔래치아 산맥을 가장 화려하게 수놓는 이 꽃은, 은은한 분홍과 순백의 색조를 두른 작은 별모양의 꽃잎들이 무수히 모여, 숲을 마치 동화 속 정원처럼 바꿔놓습니다.
잎은 진한 녹색으로 윤기가 흐르고, 꽃은 연분홍에서 흰빛까지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비 내린 뒤 더욱 선명해진 색감으로 하이커를 맞이합니다. 한 송이도 허투루 피지 않은 듯 정돈된 형태, 그 자유롭고 질서 있는 생명이 숲길 양옆을 감싸며 하이커의 걸음을 부드럽게 이끕니다.
Tellico Gap
산행의 마지막 지점인 Tellico Gap은 과거 체로키 부족에게는 산과 계곡 사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이주 통로였으며, 지금은 애팔래치안 트레일의 남북을 잇는 지리적 분기점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산길을 따라 긴 시간을 걸어 내려온 끝자락, 앞을 가로지르는 넓고 조용한 임도 위에 다다랐습니다. 이곳은 바로 Tellico Gap—애팔래치안 트레일의 흐름이 잠시 멈추는 듯한 고갯길입니다. 길이 갈라지는 이 지점에서, 걸음은 잠시 멈추고 다음 여정을 준비하게 됩니다.
다음구간을 마주하게 될 북쪽 트레일 입구 모습입니다.
텔리코 갭의 종점에 다다르자, 숲길을 뚫고 나온 전선탑 너머로 동쪽 산맥들이 한눈에 펼쳐졌습니다. 숲을 벗어나 마주한 이 장면은,
마치 긴 여정을 마친 이에게만 허락된 한 폭의 넓은 숨 같았습니다.
뜻밖의 노쇼, 뜻깊은 만남
라이드셰어 업체 "Lift"를 통해 오후 2시에 텔리코 갭(Tellico Gap)에서 픽업 후, Wayah Bald까지 이동하는 일정으로 사전 예약을 완료하고 확인까지 받은 상태였습니다. 모든 것이 분명했고,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시간에 맞춰 텔리코 갭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약속된 시간은 지나고, 연락도 없이 차량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호조차 불안정한 산속 고갯길에서 예고 없는 노쇼를 마주한 우리는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습니다. 믿고 있던 교통수단은 사라졌고, 주변엔 대안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한시간여 넘게 누군가를 막연히기다리던중 그 순간, 기적처럼 빨간 차량 한 대가 조용히 우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차창 너머로 다정한 미소를 건네며 말을 건 그들은, 플로리다에서 이 지역을 여행 중이던 노부부였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듣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1시간여 떨어진 Wayah Bald까지 기꺼이 태워다 주겠노라 말해주셨습니다.
그저 차량을 얻어 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따뜻한 말 한마디, 묵직한 배려, 그리고 함께 나눈 짧은 대화는 우리 부부에게 위로와 감동을 동시에 안겨준 순간이었습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은 잠깐일 수 있지만, 그 순간을 만들어낸 마음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함께 웃으며 사진을 남겼고, 예상치 못한 불편함은 오히려 평생 잊지 못할 하루로 바뀌었습니다.
"은혜로운 두분께" 허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 사진은 그분들의 손길에 의해 남겨진 "오늘의 사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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