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Health/건강

"인생역전 꿈꾸신다면… 수면 습관부터 고치세요"

NaNo+AlphaGo 2010. 4. 27. 14:17
추적추적 봄비가 오는 날, 서울 반포의 한 일식집에서 신철 교수를 만났다. 그와는 10년쯤 전에 알게 돼 1년에 두세 차례 만남을 갖는 사이. 취재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겠다"고 했더니 "저녁이나 함께 하자"고 했다. 본의 아니게 '취중취재(醉中取材)'를 하게 됐다.

그는 국내에서 언론을 가장 많이 '타는' 의사 중 한 사람이다. 유별난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도 아니다. 잊을 만 하면 한번씩 보도자료를 보내는데 건건마다 '기사감'이어서 오히려 낙종(落種) 하지 않기 위해 기자들은 그를 체크해야만 한다. 2001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안산 코호트 스터디'를 통해 의미 있는 연구 결과들을 줄줄이 쏟아내기 때문이다.
 
▲ 신철 교수(가운데)와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호흡장애센터 연구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코호트 스터디란 특정 질병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 특정 요인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선정한 후 일정기간 동안 이들을 추적 관찰하면서 특정 질병의 발생 양상을 비교하는 방법. 그는 2001년부터 정부 예산 70억 원을 지원 받아 안산시민 4000여명(현재는 5020명)의 유전자·생활습관·질병상태를 정기적으로 추적 조사하고 있으며, 이 자료를 이용해 주로 코골이와 고혈압·당뇨병·심장병 등과의 상관관계를 밝혀내고 있다.

신 교수는 "사람은 동물처럼 유해성분 등을 투여해 실험해 볼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어떤 병에 걸리는지를 오랜 세월에 걸쳐 추적 관찰해 보는 수 밖에 없다"며 "이런 코호트 스터디는 돈과 시간이 많이 들지만 질병 발생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변수를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있어 의학적으로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그는 "안산 스터디에 참가한 5000여명에 관한 자료가 DB로 구축돼 있어 이제는 여기에 연구 아이디어를 대입만 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덕분에 올해 들어서만 SCI 논문을 7편 발표했고, 연말까지 8편 정도 더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안산 스터디를 통해 밝혀진 만성질환의 여러 위험 인자 중에서도 특히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에 주목을 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것들이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등을 일으키는 '독립 인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한발 더 나가 만성피로, 감염질환, 면역질환, 알레르기 질환, 발기부전, 우울증, 정신질환 등 모든 병이 코골이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도 대부분 코골이로 인한 수면부족 때문이라고 믿는다. 신 교수는 "코골이로 인한 집중력·업무능률 저하까지 감안하면 코골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상상을 초월한다"며 "전 인구의 30% 정도가 코골이로 인한 수면장애를 겪고 있으며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 발기부전, 교통사고 같은 '엄청난 부작용'이 초래되는데도 이 문제에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진다"고 한탄을 했다. 그는 "코골이 문제만 해결해도 나라가 부자가 된다"고도 했다.

신 교수는 모든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 등도 정확한 진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스로 숙면을 취한다고 믿는 사람도 검사를 해 보면 심각한 수면장애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는 "항상 피로하다고 느끼거나, 감기에 잘 걸리는 사람 중 상당수는 수면장애가 원인인데도 자기는 잠을 잘 잔다고 믿는다"며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아무리 오래 자더라도 만성적 수면부족 상태가 초래돼 집중력과 몸 컨디션이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일단 수면검사를 통해 수면장애로 진단되면 코에 바람을 불어 넣어 기도(氣道)를 확보하는 기계(양압기)나 마우스피스처럼 생긴 장치를 사용해 수면의 질을 높이는 치료를 해야 한다. 그러나 1회 수면 검사 비용이 50만~70만원에 달하며, 양압기 등을 구입하는데도 몇 백 만원이 든다. 신 교수는 "가격이 너무 비싸 대중화가 안되고 있다"며 "진단과 치료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도록 정부와 의사가 함께 고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치료 비용 절감 차원에서 최근 수면무호흡증을 예방하는 '수면 조끼'를 개발, 상품화하기도 했다. "이왕 시작했으니 이 사업도 꼭 성공시켜 수면장애를 퇴치하는데 일조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수면 패턴과 관련, 신 교수는 "한국 사람은 취침 시간이 너무 늦고, 수면 시간도 짧아 큰 문제라며 좀 더 일찍 자고, 좀 더 많이 자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면 전문가답게 자신은 정확히 밤 10시에 취침해서 새벽 5시에 일어난다고 했다. 자신이 호흡기내과 과장, 수면장애센터 소장, 중환자실 실장, 인간유전체연구소 소장 등 1인4역을 감당하면서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연구를 진행하고 논문을 쓸 수 있는 것도 잠을 잘 자서 집중력을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하며 마신 술로 그의 목소리에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다. 취한 김에 그는 과거 이야기도 했다. '싸움꾼' '딴따라' 인생을 살던 그가 의사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도 집중력의 승리라고 그는 설명했다. 신 교수는 중학교 땐 2번이나 퇴학을 당하고 3번째 학교에서야 겨우 졸업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땐 아예 학교를 뛰쳐나와 '아는 형'들과 밴드를 결성한 뒤 23세 때까지 미 8군이 있는 동두천, 평택, 부산 서면, 대구 왜관, 군산 등지의 클럽들을 전전했다.

그 뒤에도 누나를 따라 미국에 건너 가서 3년 동안 접시닦이를 하는 등 '밑바닥 인생'을 살았다. 그러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미국서 독학을 해 미국 대학에 들어갔고, 귀국해서 고대 의대에 편입학해 결국 의사가 됐다. 그 뒤 다시 미국에 건너가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했고, 이학박사 학위도 취득한 다음엔 하와이 대학 교수가 됐다. 그는 "공부에 전혀 기초가 없는 상태서, 그것도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느라 하루에 잠을 두 세 시간 밖에 못 잤는데, 잠의 질이 좋았기 때문에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며 "인생 역전을 꿈꾼다면, 직장에서 인정 받고 싶다면 잠 습관부터 점검해 보라"고 말했다.

/ 임호준 헬스조선기자 hjl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