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국립공원(北漢山國立公園)
198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 국립공원은 북한산과 도봉산 전역을 포함하며 총 면적이 78.45㎢에 달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공원의 동남쪽은 도봉구·성북구·종로구·은평구의 4개 구에 북서쪽은 경기도 고양시·양주군·의정부시에 속한다.
북한산은 예로부터 한산·화산·삼각산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왔으며 북한산이라 불리게 된 것은 조선조 중종 때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부터라고 추정된다. 북한산 국립공원은 지형적으로 볼 때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산맥으로 이루어졌으며 우이령을 경계로 하여 북쪽으로는 도봉산 지역, 남쪽으로는 북한산 지역으로 크게 나뉘어진다.
남쪽의 북한산 지역은 최고봉인 백운대를 정점으로 주능선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북으로는 상장봉, 남으로는 보현봉에 이르며 다시 사방으로 굵직한 지능선을 뻗쳐 웅장한 산세를 이룬다. 특히 북한산 국립공원 전체의 중심에 높이 솟아 그 웅장함을 자랑하는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와 노적봉 일대의 암봉군은 북한산 경관의 으뜸으로 꼽힌다.
북한산의 다른 이름인 삼각산도 북한산을 멀리서 볼 때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 등 세 개의 높은 암봉이 마치 뿔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북한산 국립공원에는 숙종 37년(1711)에 축성한 북한산성과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선사, 조선 중종 때 신월 선사가 창건한 화계사, 신라의 고찰 승가사·진관사·망월사 등의 유적지가 있다.
숨은벽능선
경기도 고양시 효자동에서 서울시 강북구 수유4동(우이동) 방향으로 뻗은 길이 약 3km의 능선으로 정상부는 769m로 북한산에서 4번째로 높으나, 대부분이 고양시 덕양구효자동-사기막골에서만 조망이 되기에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 정상 바로 161m 밑에는 백운산장이 위치한다.
2009년 봄에 휴식년제에서 해제되었으며 중반은 절벽코스이며 날씨가 좋고 화창하면 도봉산과 상장능선, 염초봉 북면을 볼 수 있는 경치를 볼 수 있는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명품 코스이나, 북한산에서 가장 험한 의상능선(의상봉-문수봉)에 이어 2번째로 험한 난코스이다. 555봉을 오르는 사면 코스도 상당히 빡세며, 절벽코스를 끝내고 백염골로 내려가는 것이 까다로우며 겨울에는 이 능선 탐방을 생략하거나 부분 탐방(밤골-구멍바위 직전 까지) 하는 것이 만수무강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 정상부는 서울 강북구, 도봉구, 도봉산 서원능선, 우이남능선~우이암~도봉주능선에서만 조망이 되고,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에 있어 존재감이 없다. 도봉산 신선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백운대
백운대는 높이 837m의 봉우리로 '북한산 정상'하면 여기를 지칭하고, 서울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중생대 쥐라기에 생성된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효봉-염초봉-백운대로 구성된 북한산 원효능선의 최정점. 조선 태조 이성계가 백운대 정상을 올랐다는 기록이 있으나, 일반인들은 중간의 급경사 슬랩들 때문에 접근이 매우 어려웠으며(추락하면 즉사), 장비를 갖추지 않은 일반인들이 백운대 정상을 오르게 된 것은 1908년에 고정로프가 설치가 된 이후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진동이 매우 심하여 불완전한 공포의 탐방로였고, 2번의 탐방객 추락사 사고를 겪은 뒤 1927년 4월 1일에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고양군에서 철제 난간 공사를 시작하여 1927년 11월 12일에 완공하였다. 이후 일반 등산객들이 본격적으로 백운대 정상을 등정하기 시작했다.
북한산성
백제가 수도를 하남 위례성으로 정했을 때 도성을 지키던 북방의 성이다.
백제 개루왕 5년(132)에 세워진 곳으로,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을 때 현종이 고려 태조의 관을 이곳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우왕 13년(1387)에 성을 다시 고쳐지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 외곽을 고쳐짓자는 의견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 왕명으로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지었다.
성의 규모는 대서문, 동서문, 북문 등 13개의 성문과 불을 피우던 곳으로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다. 성내에는 중흥사를 비롯한 12개의 사찰과 99개의 우물, 26개의 작은 저수지, 그리고 8개의 창고가 있었다. 현재 북한산성에는 삼국시대의 토성이 약간 남아 있기는 하나 대개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으로 여장은 허물어 졌고, 대서문과 장대지·우물터·건물터로 생각되는 방어시설 일부가 남아있다.
이 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도성을 지키는 중요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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