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대
문장대의 모습문장대(文藏臺)는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산 33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1054m로 속리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이다. 법주사에서는 동쪽으로 약 6km 지점에 있다. 본래는 구름 속에 감춰져 있다 하여 운장대(雲藏臺)라고 하였으나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가 요양을 위해 속리산을 찾아왔을 때 어느 날 밤 꿈속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 일러 주었고, 다음 날 이 곳에 올라와서 정상에 올라 오륜삼강(五倫三綱)을 명시한 책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라 불리게 되었다.
문장대는 산 꼭대기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 특이한 형태로 이 바위에는 50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다. 이 곳은 속리산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서, 주봉인 천왕봉보다 탐방객이 더 많다. 문장대로 가는 대표적인 코스는 충청북도 보은군의 속리산 체험학습관(탐방지원센터)에서 법주사, 세심정, 중사자암을 거쳐 올라가는 코스로서, 소요시간은 편도 약 3시간 30분이다. 다른 하나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에서 올라가는 코스로, 소요시간은 편도 약 2시간 30분, 왕복 4시간이다.두 코스는 문장대 남쪽 약 170m 지점에서 만나는데, 이 곳에는 1975년부터 문장대휴게소가 설치되어 있다가 생태 복원 차원에서 2008년 11월에 철거되었다. 문장대 옆에는 조난객 구조와 물건 운반을 위해 헬리콥터 이착륙장이 설치되어 있고, 이동전화 기지국도 설치되어 있다.
문수봉
문수봉은 문장대와 신선대를 잇는 등산로 정중앙에 있는 속리산의 봉우리이다.
청법대
청법대는 문수봉과 신선대 사이에 위치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이어진 등산로가 없어 등산이 불가능하여 문장대와 신선대 사이에 있는 등산로에서만 볼 수 있다. 신선대쪽으로 가다 문수봉을 지나 뒤를 돌아 보면 볼 수 있는 기암이다. 옛날 어느 고승이 속리산 절경에 넋을 잃고 방황하다가 이 봉우리에서 불경 외우는 소리를 듣고 제 정신을 차렸다 하여 불리게 되었다. 청법대는 부처상을 하고 있으며, 주변에 일곱개의 봉우리가 있다. 이 봉우리는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청법대를 보기 위해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오르막 언덕끝에 왼쪽으로 난 샛길을 돌아서 우뚝 솟은 바위위에 올라서야 청법대와 봉우리들의 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신선대
신선대는 해발 1026m에 위치한 바위 암벽이며, 문장대에서 약 1.2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법주사에서는 약 5.7km지점에 있다. 옛날 한 고승이 청법대에서 불경 외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건너편 산봉우리에 있는 바위에서 신선들이 앉아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고승이 황급히 청법대를 내려와 신선을 만나보고자 달려갔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으며 크게 실망하고 다른 봉우리를 찾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보니 여전히 10여명의 신선들이 담소를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고승은 그이 눈이 아직도 가까운 곳에서 신선과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달려갈 마음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을 신선이 놀았다는 뜻에서 신선대라고 불리게 되었다. 신선대에는 문장대와 천왕봉 사이를 연결하는 등산로의 중간 휴게소가 있다.
입석대
입석대(立石臺)는 신선대와 비로봉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법주사에서 동북 방향으로 약 5.5km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과거 이 곳에서 조선 후기의 임경업 장군이 수도를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청법대와 마찬가지로 매우 험준하여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이 이 곳에 이르러 6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단련할 때, 어느 정도의 단련이 체력 한계가 되는 지를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하루는 석굴에 앉아 정신을 통일하고 있는데 그 뇌리에 홀연히 형체는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임경업이 정신을 차리고 그 말을 들으니 "마주 바라다보이는 석벽에 올라가 그 옆에 누워있는 돌을 비석처럼 세워 놓으면 그 힘을 측정할 수 있으리라"하는 말이었다. 임경업은 곧 경업대에서 마주보이는 곳에 올라가 커다란 돌을 일으켜 세우려 하였으나 하지 못했다. 이에 임경업이 힘이 모자람을 깨닫고 다시 열심히 체력을 단련하여 마침내 수도 7년 째 되던 해에 반석(盤石)위에 돌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그 후부터 "돌을 세웠다"고 하여 입석대(立石臺)라 부르게 되었다.
비로봉
비로봉(毘盧峯)은 문장대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속리산의 봉우리이다. 해발 973m이고, 법주사에서 약 5.77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비로’란 ‘비로자나불’을 줄인 말로써 인도어로 '모든 곳을 두루 비친다'라는 뜻이며, 광명을 뜻한다. 진표율사가 속리산 법주사에 온 이튿날 아침 새벽 방안에서 자선을 할 때 밝은 빛이 방문 가득히 비쳤고, 이에 대사가 깜짝 놀라 방문을 열었더니 맞은편 산봉우리에서 눈부신 햇빛이 오색 무지개를 띠고 비추고 있었다. 대사가 황급히 합장배례를 한 후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비로자나불이 암석에 앉아 있다가 서쪽 하늘을 향하여 구름을 타고 떠났다. 대사는 비로자나불을 직접 배알할 수 있던 산봉우리를 비로자나불의 이름을 붙여 비로봉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천왕봉
속리산 천왕봉의 모습천왕봉(天王峯)은 속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해발 1058m이다. 꼭대기에는 천왕봉을 한자로 표시한 비석이 서 있다. 문장대에서 볼 때 삼각형의 형상을 하고 있다. 법주사 동쪽 방향으로 약 5.7km 지점에 있으며, 법주사에서 올라갈 경우 성인남자 기준으로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법주사에서 문장대로 올라가는 코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탄한 편이다. 천왕봉에는 조난객 구조를 위한 헬리콥터 이착륙장이 설치되어 있다.
관음봉
문장대에서 본 관음봉관음봉은 문장대와 인접한 속리산의 봉우리로서 해발 926m이다. 문장대에서 관음봉으로 가는 코스가 있기는 하나 암릉 구간이 많아 위험하여 2012년부터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법주사
속리산 법주사 일원은 법주사를 중심으로 속리산의 천왕봉과 관음봉을 연결하는 일대 18,590,000m를 말한다. 속리산은 해발 1,507m의 천왕봉을 비롯해 9개의 봉우리가 있어서 구봉산이라고 불렸으나, 신라 때부터 속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속리산 일원은 대한 8경 중의 하나로 제2금강 또는 소금강으로도 불리는데, 계절의 변화에 따른 경치가 뛰어나며 기암, 기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속리산의 대표 사찰인 법주사는 533년 의신조사가 서역에서 불경을 가져와 절을 지을 곳을 알아보던 중에 산세의 험준함을 보고 이곳에 세운 절이라고 전한다. 혜공왕 12년에 진표율사가 대규모로 중창하였으며, 고려시대를 거치며 현재의 규모를 가추었으나 정유재란으로 전소되었다. 이후 인조 2년에 사명대사 및 벽암대사가 중건하고 증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화유산은 국내 유일의 목탑인 보은 법주사 팔상전을 비롯하여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보물 법주사 석련지,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 등 국보 3점, 보물 13점, 천연기념물 1점, 도지정문화재 24점이 있다. 속리산 법주사 이루언은 1966년 사적 및 명승 제4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명승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또한 법주사는 2018년 7월 3일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공주 마곡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속리산에는 법주사를 포함하여 복천암, 탈골암 등 10개의 전통 사찰이 있다.
국보 제55호 법주사 팔상전(法住寺 捌相殿)
이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탑 중 유일하게 근대 이전에 지어진 5층 목탑이다. 임진왜란때 한 번 불탔으나 인조 2년(1624)에 승려 벽암이 주도하여 다시 지었다. '팔상전'이라는 이름 때문에 8층 목탑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5층이다. 벽면에 석가모니 부처의 일생에서 중요한 8가지를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있어서 '팔상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금동미륵입상
신라 혜공왕 12년 (서기 776년)에 진표율사가 7년간의 노력 끝에 금동미륵대불을 조성해 모셨다.
그때부터 모신 미륵부처님을 조선조 고종 9년 (서기 1872년)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축조함에 소요되는 자금마련이라는 구실로 당백전 화폐를 주조하기 위해 불산을 몰수해 갔다.
일제치하인 1939년에 장석상 당시 주지스님이 대시주 김수곤의 후원 하에 김복진 조각가에게 의뢰하여 시멘트 부처님을 조성 하던 중 약 80%의 공정상태에서 6.25전쟁으로 중단되었다.
1963년 박추남 주지스님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장군과 이방자 여사의 시주로 복원불사가 재개되어 1964년 5월에 시멘트미륵부처님이 완성, 회향되었다.
1986년 류원탄 주지스님 당시, 붕괴직전의 시멘트미륵부처님을 다시 조성해 모셨다. 기존조성 시멘트불상의 크기와 형상을 그대로 복사해서 청동불로 바꾼 것이다.
2000년에 들어서, 석지명 주지스님이 호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해서 국난극복과 민족화합, 2002 한,일 월드컵행사의 성공 개최 및 세계평화를 발원하며 검푸른 청동녹을 벗겨내고 개금불사를 시작했다. 2년여의 노력으로 2002년 6월 7일 금동미륵대불 회향대법회를 갖게 되었는데 본래의 금동미륵부처님을 복원한 셈이다.
개금방법은 건식전기도금공법으로 순금 3미크론 두께로 연도금면적 900m^2에 황금 20Kg이 소요되었고, 재원은 신심어린 3만여 불자의 시주금으로 충당되었으며, 공사 연 동원인력은 4,500여명이었다.
높이 33 m, 무게 160톤. 거대한 미륵상은 청동불상 중에서는 세계 최대의 높이였다고 한다. 이 기록은 1993년에 홍콩의 포린 사원에 세워진 34 m짜리 천단대불 좌상이 깨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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